유영철 사건일지 2






-> 공교롭게도 주택가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 발생지역의 이름 두자가 모두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다


보니 항간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ABC살인>을 모방한 '가나다 살인' 이라는 풍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즉, 신사동 = ㅅ ㅅ . 구기동 = ㄱ ㄱ . 삼성동 = ㅅ ㅅ . 혜화동 = ㅎ ㅎ .  이기 때문에 다음 사건 역시


같은 자음으로 구성된 명칭을 가진 동네에서 발생할 거라는 예측도 제기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혜화동 사건 이후 약 3개월이 지난 2004년 2월 11일 정오 무렵 ,


분당 '정자동'의 고급 아파트에서 팔순의 부유층 노인이 둔기로 머리를 여러차례 강타 당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사건은 예전사건들과 틀린점이 많았다. 첫째로 주택가가 아닌 고층 아파트였고,


둘째로 사용된 둔기가 훨씬 작았다. 셋째로 발견된 발자국의 크기과 모양이 달랐다.


넷째로 신용카드 등 금품이 없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한달이 채 안된 3월 4일 범인이 검거 되었다.


증권사 직원이 고객을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다 거절당하자 피해자를 살해하고 신용카드 등을


훔쳐 달아난 '면식범에 의한 금푼을 노린 살인' 이었다.



->  서울 주택가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어가던 2004년 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심야에 귀가하던 여성들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괴한에게 칼로 마구 찔리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마침 경기 남부 연쇄살인(화성사건) 사건을 영화화한 <살인의추억>이 화제가 되던 때라


언론에서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 이라며 연일 자극적인 보도를 했고, 일부 언론은 3건중 2건이


목요일에 발생했고 그 중 비오는 날이 있었다는 점을 과장하여 '비오는 목요일 밤의 괴담'이라고 기사를 실었다.



<서울 서남부 여성 연쇄 피살 사건>


1. 2004년 2월 26일 새벽 5시 신림동: 방학을 이용해 서울 할머니댁에 올라와 있던 여고생(18세)이


새벽에 일나가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길에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칼로 10여차례


찔렸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짐.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평생 후유증이 남는 중상.


2. 2004년 4월 22일 새벽 3시 고척동 : 친구집에 갔다가 귀가하던 여대생(20)이 자신의 집 현관에서


문에 열쇠를 꽂아둔 채 사망한 채로 발견됨. 칼로 가슴과 다리 등 6군데를 찔림.


3. 2004년 5월 9일 새벽 2시. 대방동 보라매 공원 :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여대생(22세)이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칼로 10여 차례를 찔려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과다 출혈로 사망.



-> 일부에서는 노인연쇄피살사건과의 연관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범행시간, 장소, 대상, 방법, 흉기등이


전혀 달라 동일범의 소행으로 볼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두 종류의 연쇄살인이 한꺼번에 발생했고 범인은 오리무중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민심은 심리적 공황 일보직전까지 와있었다.



-> 혜화동 사건이 발생한지 두달 후인 2004년 1월 20일 아침 7시 반, 신촌에 있는 찜질방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수면실에서 잠자던 손님의 옷장 열쇠가 없어져 확인해보니 누군가 열쇠를 훔쳐


지갑에 있던 현금과 상품권 등 1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간 것이었다.


몇시간 전인 새벽 4시에도 비슷한 도난 사건이 발생했던 터라 종업원이 탈의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장을 열고 돈을 꺼내간 손님의 얼굴을 기억했다.


경찰이 출동했고, 용의자를 붙잡혔다. 이름은 유영철, 절도 등 전과 범이었다.


이 용의자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한편, 피해자에게는 "20만원을 줄테니 없었던 일로 하자" 고


합의를 종용했고 연행하던 경찰관에게는 화장실에 가자고 하고는 피해자와 합의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결국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지 않아 경찰은 용의자 유영철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 지구대로 연행했고, 유영철은 목격자 진술을 듣느라 잠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수갑을 풀고 도주했다.


경찰에 쫓기던 유영철은 3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도주하다 다시 붙잡혔다.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데다


찜질방 종업원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고, 도난 당한 금액이 10만원밖에 안된다는 이유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유영철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 10만원이라는 소액 절도 혐의를 받고 범행을 부인한 상태에서 수갑을 풀고 도주극을 벌이는 범인의
이상행동에 주목하지 않은 경찰과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조인들의 성의없는 판단이 초래할 엄청난 비극을
과연 짐작할수 있었을까. 한국 범죄수사 역사에서 '천추의 한'으로 남을 만한 순간이었다.



-> 2004년 2월 6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외국어대 인근 이문동의 한 골목길,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을 서두르던 의류상가 직원 전효실(25세)씨는 누군가와 마주쳤고, 가슴과 팔 등 5군데를 칼에


찔려 몸부림치다 가까이 있던 중국집 문을 밀고 쓰러졌다.


한창 배달 준비를 하던 중국집 주인은 갑자기 피를 흘리며 들어와 쓰러진 여성에게 다가가 괜찮냐며


말을 시켜봤지만 신음소리만 흘릴뿐이었다. 112신고후 5분만에 경찰이 도착해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피해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금품을 가져가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치정이나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 2004년 4월 14일 새벽 1시 50분경, 인천 월미도 바닷가 가까이 있는 석유가게 주차장에 있던


승합차에서 갑자기 불길이 솟아올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인근 석유 저장고로 불길이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겨우 불길을 잡고 진화에 성공했는데, 불이 꺼진 차안에는 시체 1구가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시체는 양손목이 절단되어 없는 상태였고 온몸에 20여 군대 칼레 찔린 상처가 발견되었다.


국과수의 부검 결과 머리에서 커다란 둔기로 얻어맞은 상처도 발견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피해자의 신원은 서울 황학동 도깨비 시장 노점에서 불법 CD 나 비아그라 등을 판매하는


남자(44)로 채권 채무나 원한관계등 살해될 만한 주변 문제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살해되던 날 저녁 7시경 피해자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뒷골목에서 심각하게


<SPAN #fff000? BACKGROUND-COLOR: #ff001e; ?COLOR:>이야기</SPAN>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근 가게 종업원에게 목격되었다.



-> 연초부터 부천에서 초등학생 2명이 실종된 후 사체로 발견되고 포천에서도 실종된 여중생이 피살된 채


발견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실종 신고 접수 이후 경찰의 초동 조치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2월 17일부터 실종자 수사에 전념하는 '100일 작전'을 개시하겠다고 발표.


100일 작전이 한창이던 3월 24일, 서울의 한 경찰서에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던 20대 여성의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다. 밤에 손님의 전화를 받고 나간 이후 소식이 없어 걱정하던 동료가 신고한 것이었다.


실종자 수사에 전념하는 100일 작전 중이었지만 유흥 관련없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들은 종종 연락없이


영업 장소를 옮기기도 하고 일을 그만두고 새 삶을 찾기 위해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고 판단한 경찰은


'일단 기다려보자' 며 신고자를 돌려보냈다.


6월 4일과 28일에도 비슷한 실종신고가 접수되었지만, 유사한 방법으로 별다른 조치없이 그냥 넘어갔다.


몇 달 후, 이 3건의 실종신고 중 단 한건만이라도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피해자를 단 몇 명만이라도 줄일수 이었으리라는 아쉬움에 피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 2004년 7월 12일 밤 11시경, 서울 관악구에 사무실을 둔 출장 마사지 업체에 30대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표시 장치에 남겨진 번호는 휴대전화, 신촌 로터리에서 만나자는 호출이었다.


이 전화를 받고 나간 임희선(27)씨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업소로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비명 같은


한마디를 남겼다.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요." 전화를 받았던 동료가 다시 통화를 시도해봤지만


이미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이후 희선씨는 연락도 두절되고 업소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비록 출장 마사지업에 종사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고향 가족에게 꼬박꼬박 돈을 보내는 보람으로


살아가던 희선 씨였기에 장난이나 허위 전화는 아니라는 것이 업소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이틀이 지난 7월 14일, 업주 노씨는 과거 사건 관계로 만난 적이 있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양형사에게


전화했다. 양형사는 전화로 들은 내용을 첩보로 작성해서 보고하고는 수사에 착수했다.



-> 이튿날인 7월 15일 새벽 2시, 희선 씨를 호출했던 번호가 전화기 화면에 뜨면서 벨이 울렸다.


신촌 G편의점 앞으로 마사지사를 보내달라는 목소리는 사흘 전 그때와 같았다. 신촌 현장에서 잠복 근무중이던


양형사에게 연락한 뒤 마사지사가 출발했고, 마사지 업소 주인과 친구들은 눈에 띄지 않게 마사지사를 따라갔다.


마사지사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자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남자는 모습을 감춘 채 마사지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교체해달라고 전화했다. 다시 교체된 마사지사가 약속 장소에 가니 남자는 전화를 걸어


만날 장소를 인근 H 대학교 앞, G 마트 뒤편, G 마트 앞쪽 등으로 계속 바꾸어대는 것이었다.


간첩 접선하듯이. 할수 없이 양형사 팀은 합정동 H 대학교 근처, 마사지 업주 노씨 일행은 신촌 G마트 근처로


나뉘어 잠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