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서남의대생들 "도서관도 복사기도 인터넷도 없다"


교육부가 서남의대 폐지 방침을 밝힌 지 1년이 지났지만 도로 제자리다. 1년 만인 지난 6월 중순, 다시 찾은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서남대 남원캠퍼스는 여전히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했다. 본관 앞에 쳐진 천막과 플래카드만 이곳이 겪고 있는 ‘진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캠퍼스는 조용했지만 학생들 사이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이들의 관심은 시험문제보다 서남학원과 교육부간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 집중되는 듯했다. 서남학원이 교육부를 상대로 제기한 감사 결과 처분 취소 소송 결과에 의대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며칠 뒤(6월 26일)인 서울행정법원은 서남학원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남의대생들은 “이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는 것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학생들은 울먹이기도 했다.



의대가 있는 서남대 남원캠퍼스의 ‘현실’을 본 뒤이기에 학생들의 이같은 반응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도 없는 캠퍼스에서 의사 꿈꾸는 학생들







의대가 있는 서남대 남원캠퍼스에서 대학 캠퍼스의 활기를 찾을 수 없는 건 예년과 마찬가지였다. 학생회관이라는 건물은 여전히 공사 중인 채로 방치돼 있었고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각오는 하고 들어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의사를 꿈꾸는 의대생들이지만 교과서 외에 의학서적을 찾아서 볼 곳도 없다. 의대이면 으레 있는 도서관도 없어서(건물이 기울어 준공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쇄된 상태) 강의실 등에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의학도서관이 있다고 했지만 이곳을 이용해 본 학생들은 없었으며 열람실도 부족해 본과생들 위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서남의대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남원시립도서관인 셈이다.



한 학생은 “보통 학교 도서관을 통해 들어가면 논문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도서관이 없어서 그런 것도 없다”며 “도서관이 없으니까 강의실이나 자기 방에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의학서적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일반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찾기 힘든 게 의학 서적인데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이 남원시립도서관일 정도”라며 “차라리 주말마다 (다른 대도시에 있는) 집에 가서 그 인근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했다.



한 학기에 1인당 몇십만원씩 갹출해 강의자료 복사 등에 사용하고 있는 것도 여전했다. 재학생 A씨는 “교수님이 강의 자료를 파일로 주면 프린트를 해서 학교 밖에 있는 문구점까지 가서 복사를 해 온다”며 “학교 내에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 한 대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인 교수들이 의대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초·중·고등학교에도 있는 양호실조차 없다. A씨는 “기숙사에 있는 구급약이 전부다. 학교 내에 양호실이 없어서 아프면 무조건 학교 밖에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말도 서남의대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대학 내 자체 인터넷망은 고사하고 기숙사에도 랜선이 깔려 있지 않아 사비로 설치해야 한다. 재학생 B씨는 “팀 과제를 하기 위해 모일 장소도 강의실 말고는 없고 모인다고 해도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서 휴대폰 테더링이나 핫스팟(휴대폰을 모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한다”며 “기숙사 랜선 설치도 학생들이 직접 사람을 불러서 개별적으로 설치했다. 물론 사비를 털어서 설치했다”고 말했다.



병원 매트리스 재사용하는 기숙사



학생들이 의대 건물 외에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인 기숙사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공동 샤워장과 세면대에는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으며 화장실도 청소를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복도 곳곳에는 정체 모를 얼룩이 남아 있었고, 금이 가 있는 방도 많았다.



그나마 최근에 일부 샤워기를 교체(학생들은 그마저도 중고인지 모양이 제각각이라고 했다)해 주고 세탁기도 4대 정도 새로 들어왔다. 곳곳에 녹이 슬어 있는 세탁실 안에 놓인 ‘신상 세탁기’가 오히려 생소해 보일 정도였다.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신상’은 세탁기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남의대 기숙사 내부 모습.
서남의대 기숙사 내부 모습. 송수연 기자

기숙사 정원이 모두 차지 않아 학생들은 대부분 2인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4인실과 2인실의 차이는 사용하는 인원수뿐이었다. 2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는 4인실을 2명이 사용하면 2인실이고 4명이 사용하면 4인실인 것이다. 하지만 비용은 2인실이 4인실보다 비싸다고 했다.



C씨는 “남자 기숙사의 경우 샤워실 옆에 있는 방은 물이 샌다”며 “화장실 냄새가 심해서 오죽하면 기숙사생 한 명이 나프탈렌을 직접 사와서 변기에 넣기도 했다.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면서 퇴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는 기대도 안 한다”며 “올해는 그마나 화장실 휴지를 학교에서 주고 있지만 작년까지는 휴지도 개별적으로 사서 사용했다”고 했다. D씨는 “기숙사 창문이 잘 안 닫혀서 벌레가 쌓인다. 벽 가득 벌레가 뒤덮은 적도 있었다”며 “그래서 신문지랑 휴지로 창틀을 다 막고 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도에 있는 카펫이 너무 더러워서 청소 좀 해달라고 학교 측에 건의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더라”며 “재정이 마련되면 실행하겠다는 식의 답만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기숙사 침대 매트리스 일부가 교체됐다. 그런데 학생들은 얼마 후 경악했다. 교체된 매트리스의 출처가 서남대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다.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서남대병원에서 사용하지 않는 ‘중고’ 매트리스를 기숙사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E씨는 “침대 매트리스를 바꾼 학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한 교수님이 서남대병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면서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까지 하더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런 기숙사를 이용하는 데 한 학기에 100만원 정도(2인실 기준) 지불하고 있었다.



서남대 남원캠퍼스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기숙사 식당이 유일했지만 다양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그날 정해진 식단에 따라 백반 위주로 제공된다고 한다. 그 외 매점이 하나 있는 정도. E씨는 “다른 학교 식당에서는 한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해진 한 종류가 고등학교 급식처럼 나온다”며 “기숙사생은 아침과 저녁이 제공되고 점심은 2,500원만 내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의대 정년퇴임한 교수들이 더 낫다”



올해 초 서남대 남원캠퍼스에 붙었던 대자보.
올해 초 서남대 남원캠퍼스에 붙었던 대자보.

“복지가 뭐냐”고 되물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이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만 받을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서남의대 교육 환경은 교육부가 폐지 방침을 밝혔던 1년 전보다 더 열악해져 있었다. 교수들과 재단의 싸움, 재단과 교육부의 싸움 속에 학생들의 교육권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모습이었다.



올해 초 2014학년 1학기 수강신청이 끝난 후 학생들은 캠퍼스에 붙은 대자보 하나로 ‘학점 불인정’이라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재임용되지 않은 교수님들 강의의 학점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재임용되지 않은 교수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이 명단에는 의대 교수 8명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 6명이 포함돼 있었다. 서남학원이 지난 1월 이사회를 열고 재임용 심사대상자 82명 중 57명의 재임용을 거부했으며 그 명단이 뒤늦게 학생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학생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서남대와 교육부 등을 찾아다니며 진상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서남대와 교육부 측은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들 중 다수를 시간강사로 임용해 1학기 강의를 맡겼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 수준도 문제다. 학생들은 “우리가 듣기에도 수업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 강의가 종종 있다”고 불만족스러워했다. ‘한옥의 이해’, ‘자동차의 이해’, ‘일본문화의 이해’ 등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과목을 한꺼번에 개설해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강사도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다른 의대에서 정년퇴임한 후 서남의대로 온, 나이 지긋한 교수들을 더 선호했다.



A씨는 “전남의대 등 다른 의대에서 정년을 마치고 온 교수님들이 제일 훌륭하고 잘 가르치는 것 같다”며 “그 교수님들은 진짜 교수 같다. 그런 교수님들이라도 와서 가르쳐 주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기 초 강의를 시작할 때 강의계획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다른 의대에서 정년퇴임하고 온 교수님들 뿐”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체험하고 있는 교육 수준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알리미’에 공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의대를 설립한 7개 대학 중 서남대만 유일하게 2013년도 교내·외 연구비가 한 푼도 없었으며, 발표된 SCI급 논문도 0건이었다. 또한 전임교원 수는 28명에 불과하며 의대의 경우 1인당 장학금이 11만4,500원으로 493만4,500원인 성균관의대의 40분의 1도 안됐다.



“다녀봐서 안다. 서남의대는 정상화 될 수 없다”


서남대 남원캠퍼스 의대 건물 내부.
서남대 남원캠퍼스 의대 건물 내부. 송수연 기자

교육부의 폐지 방침 발표 후에도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지난 6월 26일 교육부 감사 결과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서남학원이 일부 승소했다는 소식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남의대생 100여명은 의대를 폐지해 달라는 탄원서까지 제출하기도 했다. 학점 및 학위 취소 위기에 놓인 졸업생들에게는 구제의 길이 열렸지만 재학생들은 다시 부실교육 안에 갇히게 됐다는 말도 나왔다.



1심 재판 결과를 들은 한 학생은 “우리가 이 학교를 다녀봐서 안다. 교수님들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학교는 정상화될 수 없다. 다녀봐서 잘 아는 우리가 정상화될 수 없다고 하는데 계속 이 곳에서 공부하라는 말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학생은 “교육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주변 시설은 상관없다. 제대로 된 교수들로부터 제대로 된 수업을 받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의대가 폐지되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질 수 있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전학 간 의대에서 ‘너희들은 부실교육을 받았으니 1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그래도 감수하겠다. 이 상태로 여기서 계속 교육을 받을 바에는 1년을 꿇더라도 다른 학교로 가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당장 의대 폐지가 어렵다면 조만간 진행될 2015학년도 수시 모집이라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는 “교육부가 이번에는 신입생을 받지 못하도록 조치를 내렸으면 한다. 학생들이 계속 들어올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년 전 만난 서남의대생들은 폐지도 아니고 정상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지만 1년 뒤인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남의대생들은 여전히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 교육부는 가만히 있고, 남원주민들은 서남의대 폐교만은 안된다고 난리치고.정치인들은 주민들 눈치보고... 정작 대학은 정상화가 요원하고.. 정상화 가능성은 없는데 법원 판결은 이상하게 나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