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5.18관련 필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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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가장 편한 순간일 때조차 광주항쟁에 대한 기억에 대해 언급하길 꺼리신다.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일종의 채무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80년 5월 어머니는 젖먹이인 나를 부둥켜 안고 있었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어머니는 살아야했다. 덕분에 나도 살아서 효도 따위 모르고 이렇게 경우 없이 산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는 내게 참 복잡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다가 다시 전학을 갔던 광주의 고등학교에서 나는 처음 그 잔상과 마주했다. 야간 자율학습 때 내가 농으로 김대중을 비아냥거려 생긴 일이었다. 한 친구가 발끈하더니 결국 주먹질이 되었다. 아이들이 뜯어 말리는 가운데 그는 “네가 광주나 김대중에 대해 뭘 아냐”고 소리쳤다. 당시로선 참 뜬금없고 촌스런 말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광주항쟁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기록 유산에 등재될지 모른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정부의 기록물에서부터 취재수첩, 병원기록들, 그리고 미국의 광주항쟁 관련 비밀해제 문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가 제출되었다. 그런데 곧 이어 희한한 소식이 들려왔다. 한미우호증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에서 “5.18의 진실은 600여명의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와서 시민들을 칼빈으로 죽인 것”이라며 유네스코에 반대 청원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시민군도, 계엄군도 북한 사람이라면 전라도는 북한 땅이었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특정 이념들과 싸워야 한다는 건 지치는 일이다. 광주항쟁에 관련한 북한 개입설에 대해서는 이미 넘치도록 충분한 자료들에서 해명이 이루어진 상태다. 80년 5월 25일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던 스물 한 살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립국장실에 허겁지겁 들이닥치면서 “독침을 맞았다!”고 외친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시민군이 점거 중이던 도청 안의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광주사태는 간첩의 책동”이라는 신군분의 선전에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이 사건은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 작전이었다. 이틀 후 계엄군은 도청을 접수하고 시민군과 8명의 투항자를 사살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는 당시 계엄군 병사가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을 던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광주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기억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광주항쟁을 극화한 드라마, 영화 등 회고록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 일어난 일을 축소하거나 주요 사실관계에서 단지 무분별한 뜨거움만을 강조해 의도적인 포르노그래피 마케팅의 수단으로 전락시켜왔다. 후자의 경우는 소위 민주세력이라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 '정의롭게' 주도되어 왔다는 점에서 더 악랄했다. 광주를 바라보는 이 서로 다른 두가지 태도는 공히 광주를 사실이 아닌 논쟁의 영역으로 밀어넣는데 일조했다. 결국 북한 운운하며 죽은 자들을 욕되게 하거나 그저 뜨겁기만한 상품으로 팔아먹어 고작 삼십 수년 전의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처럼 만들어버린, 지금의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낸 건 서로를 절대악으로 상정하고 그것으로 연명하는 자들의 협업이다. 그렇게 5월의 광주는 사진 한 두장의 느슨한 인상으로, 낡은 구호로, 공동화한 기억으로 타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공수부대가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를 조준 사격하고, 화염방사기를 동원하고, 임산부와 여고생을 대검으로 학살하고, 구타를 제지하는 할머니를 다시 구타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아직까지는, 지금 이 시간 적지 않은 이들의 기억과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당장 구글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당시 해외 기자들에 의해 촬영된 사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장담하는데 당신이 그 어느 잔혹한 영화에서도 차마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이다. 폭력의 강도를 확인해보라 권유하는 방식으로 지킬 수 있는 과거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 그렇게라도 사실을 사실로 지켜야 하는 현실은 얼마나 초라하고 무력한 것인가.

빤히 벌어진 죽음의 초상들이 알량한 이해관계에 의해 영 다른 기억으로 왜곡되고 지워지는 지금 이 시간에, 그나마 광주를 기억해보려 애쓰는 모든 이야기들이 고맙고 귀하다. 최근 80년 5월을 통과한 자연인들의 기록물인 다큐 영화 <오월愛>가 개봉했다. 어김 없이 오월이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 안에서 일종의 소모품으로 산화해간 그들의 죽음 위에 우리가 야구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렇게 질기게 살아있다. 외면했거나 망각했거나 가르치지 않았거나 쉽고 편하게 장삿속으로 팔아 치웠던 우리 모두 광주의 죽음 앞에 새삼, 유죄다. 내게 주먹을 날렸던 친구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는 80년 5월 시민군이었고 도청에서 군인에 의해 사살 당했다. 아버지들의 명복을 빈다. 허지웅 (시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