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대참사 구호품 절도범들
방송국 직원 사칭 40대男 3명 “팽목항으로 갈 구호품 달라”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로 온 국민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생존자 생환 소식을 기원하는 가운데 참사 현장에 실종자 가족 등에게 지급될 구호물품을 노린 도둑들이 기승을 부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3시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체육관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성 3명이 대형 탑차를 끌고 나타났다. 이들은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체육관 1층 입구로 가서 “모 방송국 취재 차량인데 지금 팽목항으로 가야 한다”며 “팽목항에 물품이 부족해 가져갈테니 구호물품을 달라”고 요청했다.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있던 자원봉사자 및 진도군청 관계자들은 쌀과 김, 모포, 음료 등 약 10개 꾸러미의 구호물품을 챙겨줬고, 이들은 구호물품을 탑차 쪽으로 옮겼다.
그러나 수상한 낌새를 느낀 한 자원봉사자가 이들을 뒤쫓아가 확인한 결과,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문이 열린 탑차 안에는 방송 장비가 아닌 구호물품이 가득했던 것이다. 쌀과 생수, 매트와 담요, 김과 각종 식료품 등 한 살림이 차려져 있었다. 현장으로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을 잡아 경찰에 넘기려 하자, 이 남성들은 무릎을 꿇고 빌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는 구호물품만 수거한 뒤 돌려보냈다.
자원봉사자는 “구호물품을 노리는 절도범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물론, 일반 시민들은 빈 쇼핑백을 들고 보급소를 돌아다니며 쇼핑하듯이 구호물품으로 가방을 가득 채워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혀를 찼다. 특히 노숙인 등도 보급소에서 나눠주는 속옷과 티셔츠 등 옷가지를 4∼5벌씩 챙겨가면서 정작 실종자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품은 부족한 실정이다.
절도와 물품 손실이 극에 달하자 지난 18일부터 실종자 가족은 실종자 가족임을 증명하는 명패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진도체육관에서 구호물품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김인아(여·35) 씨는 “근본적으로 재난상황 발생 시 이러한 구호물품을 접수하고 나눠주는 매뉴얼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되는 대로 무질서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