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저는 1976년생으로 만화를 처음 접한 것은 '보물섬' 이라는 만화잡지였고, 초등학생이 된 이후는 형을 따라서 간 대본소가 어찌보면 만화가는 물론 다양한 만화의 세계에 빠지게 만들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만화책 5권을 100원에 보거나 아니면 하루종일 얼마 이런 식으로 대본소 요금을 책정하고 운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대본소에서 본 한국 만화와 추후의 일본 만화의 양이 그 이후에 대여점이나 서점을 통해서 구매한 만화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때까지 하루 일과중에 꼭 대본소에 가서 100원을 5권을 보거나 아니면 주말에 하루종일 앉아서 그동안 돈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장편들을 주린 배를 움켜잡고 완독했었습니다. 그당시 봤던 작품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박봉성씨의 '신의 아들', '신이라 불리우는 사나이', '청개구리' 시리즈, 이현세씨의 첫 무협소설이었던 작품(작품명이 기억이 나질 않지만 꽤나 권수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허영만의 홀 시리즈와 황금산장, 고행석의 불청객 시리즈입니다.
지금이야 PC방이란 것 때문에 만화방이 많이 없어져서 찾기 힘들어졌지만 그때는 동네에 서너군데의 큰 대본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꽉꽉 찾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당시에는 만화라는 것을 지금과 같이 단행본이란 것이 없어서(제가 접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월간 보물섬, 이후 등장한 격주간? 아이큐점프가 전부 였습니다. 특히 아이큐점프의 경우 TV에서 CF까지 했는데 그때 등장했던 전유성씨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군요.
그때부터일까요? 한국 만화계의 중흥과 함께 몰락을 안겨줄 사건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한국 영화계가 지금과 같이 대단한 파워를 보이기 이전에는 헐리우드, 홍콩 영화에 밀려서 솔직히 힘도 쓰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내성이 생겼는지 경쟁할 수 있는 대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영화 배우는 물론 감독까지 스타가 되면서 속칭 티켓파워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죠. 만화계의 경우에는 단행본을 접하기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다름 아닌 일본 망가들이었습니다.
일본에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수많은 명작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 만화들은 아이큐점프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만화 독자들을 일본 망가의 팬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그게 나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 덕분에 수많은 망가들이 불법적으로 생산된 저질, 저가 단행본으로 제작되서 학교앞 문방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대본소를 가던 친구들, 아이큐점프를 사서 돌려보던 반 친구들이 그때부터 300원, 500원짜리 일본 망가 단행본을 구입해서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시간까지 몰래 보는 기현상이 일어났죠.
제가 겪었던 것중에 가장 심했던 것은 평소 아주 평범한 해치백 스타일의 가방을 메고 오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학교 운동부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던 농구가방을 메고 오더군요. 마치 권법소년의 한주먹의 모습을 보는 듯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멋져보였죠. 저도 그 때문에 어머니를 졸라 농구가방을 사달라했던 기억이 납니다만 ... 이 이야기는 아니고, 여하튼 그 농구가방에 500원짜리 드래곤볼 수십권, 공작왕, 시티헌터, 바스타드 등등의 만화책을 가져왔더군요. 저도 그 당시에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망가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은 물론 하교시간에도 집에 가지 않고 친구를 졸라 만화책을 빌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일본 망가는 한국 만화를 대체했고, 그에 맞게 한국 작가들의 신작이 일본 망가와 비슷해져 가버리는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특히 심했던 작품중 하나가 바로 '레인보우' 였을 겁니다. 꽤나 잘 그린 SF만화였지만 묘하게도 일본 만화를 대놓고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PC통신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더군요. 저는 당연히 PC통신을 할 정도로 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들 이야기만 들었지만, 작품 자체는 김준범의 SF만화 만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재가 제대로 되지 못했는지 조기연재중지를 했습니다. 아마도 만화 잡지도 독자들에 인기도에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그만큼 일본 망가의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그 이후로 창간되는 만화잡지는 한국 만화가의 작품을 메인으로 걸기보다는 일본 망가를 전면에 세우기 시작했으며, 아이큐점프의 '드래곤볼' 에 맞설만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서 노력했죠. 지금은 한국 만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어차피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고, 80년대 영화판처럼 어느정도 내성을 키운 후 자생력을 올린다면 지금의 한국영화의 영광처럼 한국 만화계에도 더이상 일본 망가에 기댄 기형적인 시장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 좋아 보이는 추진력으로는 웹툰의 성장이겠죠. 지금 웹툰의 인기가 절정이니 보다 많은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한국에 머물지 말고 해외에서도 통할 월드와이드한 소재의 작품을 제작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