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 족발집 아들에서 '국민썸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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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타임라인] 정기고, 족발집 아들에서 '국민썸남'으로

추억은 곱씹을수록 진한 여운을 남긴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겨놓은
잔상이라 더욱 그렇다. 때론 먹먹하게, 또 미소짓게 만드는 잊을 수 없는 '그 때 그 일들'. 지금 스타들이 팬들과 공유하고 싶은 '묵은
잔상'들을 꺼내놓는다. 일간스포츠가 준비한 스타들의 연대기, '스타 타임라인'이다.


세 번째 주인공은 최근 가요계와 '썸'탄
남자 정기고(고정기•34)다. 10여년간 음악을 했지만 정기고의 인지도는 미미했다. '정기고'하면 "그게 누구야"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 노래가
좀 알려지고 나서도 성은 '정'이요, 이름은 '기고'로 알려진 비운의 남자. '딱 그 정도'의 존재감이었던 그가 지난해 걸그룹 씨스타의 소속사
레이블인 스타쉽엑스와 계약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사실 그 때도 "왜 계약했대"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뭘 해도 되는 회사'
스타쉽은 눈치를 챘다.  34세 정기고의 성장판이 기적적으로 열려 있음을'

여심 스틸러' '국민 썸남' 정기고의 스타 탄생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소유와 짝을 이뤄 발표한 신곡 '썸'은 상반기 최대 히트곡이 됐다. 최근 발표한 솔로 싱글 '너를 원해'도 정상을
찍었다.  9회 2사 상황에서 정기고가 친 역전 만루 홈런은 그렇게 담장까지 훌쩍 넘겼다. 이제 우린 정기고가 궁금하다. '여심'을 획득하는
본능적 감을 아는 '썸남'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뚝 떨어진 걸까. 타임머신을 타고 정기고와 추억 여행을 떠났다. '타임 슬립' 첫 장소는 서울
상도동 '보쌈 족발' 전문점이다. 요즘엔 ‘정기고 네 족발집’으로 명소가 된 곳이다.

▶ #1. 90년대 초반 초딩
정기고, "족발보다 돈가스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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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이 족발집을 벌써 25년 째 운영 중이라고요.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밝힐게 있어요. 우리 가게, 엄밀히
말하면 족발집이 아니라, 보쌈집에요. 방송에서 김구라 형님이 족발집이라고 소개해서 어머니가 '우리집 족발집 아니라, 보쌈집인데ㅜ'란 문자까지
보냈다고요. 하하. 부모님이 보쌈집을 시작한 건 제가 초등학생 때였어요. 아버지께서 호텔에서 요리를 하셨는데, 갑자기 개인 사업을
시작하더라고요. 오픈을 하고 얼마 안 돼서 가게에 불이 난적도 있어요. 동네 주민이 초인종을 누르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가게에 불났다'고
알려줬어요. 큰 불은 아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가게가 점점 잘 되기 시작했어요. IMF 때도 많이 힘들었다가,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살아났고요. '정기고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저 때문에 방송에도 몇 번 소개됐는데, 어머니가 '사람들이 광고성으로 오해할 지도 모른다'며
걱정해요. 제가 이제 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집안일이 발목 잡을까 봐 걱정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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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과체중이었다던데, 보쌈•족발을 많이 먹어서 그랬나요.


"아녜요. 초등학생이 족발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돈가스를 좋아해서, 아버지가 가게를 연다고 했을 때도 돈가스 가게 하면 안 되냐고 조를 정도였거든요. 그 땐 그냥 참 많이
먹었어요. 땅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는 스타일이랄까? 가리는 게 없었어요. 얼마나 뚱뚱했냐면, 중학교 때 100M 달리기를 하면 늘
여자애들한테 질 정도였으니까요.

- 혹시 족발집 아들이 별명 아니었을까요.

"딱 그랬어요. '족발집
아들'이 학창시절 별명이었어요. 근데 그게 꼭 싫지는 않았어요. 족발집을 하는게 사실이니까요. 20세 때까지 가게가 바쁠 때는 카운터도 보고
그랬거든요. 그렇다고 족발•보쌈 삶고 이런 건 못해요. 만만해보여도 비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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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1세 정기고, 베프와의 뜨거웠던 유럽 배낭여행


- 유럽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요.


"21세 때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와 20일 정도 유럽 여행을 다녀왔죠. 집에서 주는 돈 조금과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럽으로 떠난거죠. 남자 둘이 여행을 다니면 꼭 싸우게 된다는데, 우린 그런 게 없었어요. 처음부터 약속을 했어요. 둘 다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오기로. 저는 그게 '이태리 쇼핑'이었고 친구는 '니스의 누드해변'에 가보는 거였죠."

- 그래서 누드
비치는 경험했나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누드 비치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에 기차를 8시간이나 타고 갔어요. 갔더니 방값이
너무 비쌌어요. 지금까지 낸 돈의 거의 두 배를 지불해야 했어요. 근데 누가 20분 거리에 모나코가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버스를 타고 모나코에서
내리니, 이게 웬걸. 휘황찬란한 요트에, 사람들도 턱시도를 입고 돌아다니고요. 방값은 역시 니스보다도 훨씬 비싼거죠. 결국 다시 니스로 돌아와
역에서 노숙 신세를 지고 누드 비치는 그 다음날 갔어요."

- 설레는 경험이 됐겠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문란하거나 선정적이진 않았어요. 한 유럽 여성분이 원피스만 입고 와서, 갑자기 옷을 훌러덩 벗더니 팬티만 입고 누워서 책을 읽더라고요.
근데 대부분 노출 수위(?)가 약해서, 친구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비춰졌어요."


- 여행지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죠.

"독일에서 기차를 탔는데 텅텅 비었더라고요.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는데 동양인 여성 두 분이 있었어요. 물어보니, 한국인이었던 거죠. 우리보다 나이는 많았는데, 얘기를 하다 금세 친해졌어요. 그날이 그
친구들의 독일 마지막 밤이었고 우린 도착 첫 날이었는데, 그 분들이 스위스에 간다기에 고민없이 동행했죠. 스위스에서 3일 정도를 같이 보내고
각자 갈 길을 갔죠. 이런 것도 여행지 로맨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그랬어요 '남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가봐야 한다'고. 여행을
다녀오면 '뭘 좀 배우고, 내 인생이 바뀌게 될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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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학생 정기고, '국민 썸남'의 첫사랑


- 가장 뜨거웠던 사랑은 언제였나요.

"20대 중반에
만났던 친구였어요. 그냥 평범했던 거 같아요. 어머니가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해서, 그냥 점수 따라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했죠. 학교를 다닐 땐
친구였다가, 졸업을 하면서 사귀었는데 불꽃은 튀었지만 평범했어요."

- 첫사랑은 언제였나요.

"뚱뚱했던
중학생 때였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만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헤어졌어요. 중학생 땐 공중전화로 통화하고, 학교 끝나고 바래다주는 게
데이트의 전부였죠. 3년 만나면서 손 한 번 잡아봤어요. 그 땐 정말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고요. 순수할 때여서 그랬는지 정말,
진짜 많이 좋아했어요. 그래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던 거죠. 제가 또 한 번 헤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스타일이고요."

- 결혼관도 궁금해요.

"결혼 적령기인건 맞죠. 근데 결혼에 대해선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도 이혼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이에 떠밀려 하고 싶지는 않아요. 부모님이 '욕심에
끝이 있을 것 같냐'고 그러는데 전 음악적으로 뭔가를 이뤄 놓고 하고 싶어요. 제 연애 스타일도 궁금해하는데 생각보다 조신해요. '썸' 활동
이후로 알아보는 분들이 늘어서 점점 밖에 나가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연애할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공개 연애 생각은 없습니다.
있어도 없다고 할거에요. 사생활은 공개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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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9세 정기고, 음악으로 먹고 살아보자


-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언제였나요.


"29세였어요. 그 전까지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음악이 내 직업이다. 인정을 받아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거에요. 그때부터 미래를 그렸어요. 내 이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싱글을
준비했고, 2008년 12월에 첫 솔로 싱글 '바이바이바이'가 나왔어요. 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거죠. 제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라고
생각하지만, 2009년부터 열심히 한 덕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해요. 진지하게 작업한 게 스타쉽과의 계약까지 끌어냈다고
생각해요."

- 그 전까지는 어떻게 버텼나요.

"28세 때까지는 부모님한테 용돈도 받고요. 공연하고 친구들
앨범 작업 도와주는 일도 했는데 한 달 수입이 100만원 미만일 때도 있었어요. 그 당시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만 60~70곡 정도는 될 거에요.
어릴 땐 밥 한 끼 안 먹고 옷 좀 덜 사입고 그러면 됐거든요. 그땐 수입이 적은 걸 억울해하지 않았어요.“

- 스타쉽엑스와
계약은 음악적인 타협이었나요.


"서포트해줄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스타쉽에서 처음 계약 이야기를 꺼냈을 땐 당연히
의심했죠. 결국은 날 아이돌처럼 만들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회사에서 제게 비전을 보여줬어요. '제 뮤지션적인 행보를 무시하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3~4차례 만나서 얘기를 하고 계약했죠. 아 이야기도 있었네요. '정기야, 너 언제까지 좁은 곳에서만 음악을 할 거니, 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네 음악을 들려주자'고 했죠. 멋있는 이야기잖아요."

-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까요.


"2005년 정도면 좋을 거 같아요. 그 때로 돌아가서, 좀 더 열심히 음악을 하고 싶어요.
너무 늦게 정신을 차린 게 후회되거든요. 이젠 정말 시간이 아까워요. 타이트하게 작업해서 저만의 디스코그라피를 만들고
싶어요."


정리: 일간스포츠 엄동진 기자 kjseven7@joongang.co.kr
사진: 일간스포츠
김진경 기자 jink@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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