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시골에 한 번이라도 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시처럼 땅의 소유를 확실히
하기 위해 울타리나 담장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는 '울타리가 시골에도 필요한가...'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모처럼 주말이라 외갓댁으로 외할머니 농사일을 도우러가셨던 어머니가 당혹스런 일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외할머니가 손수 가꾸신 밭에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농작물을 캐오시는, 그 잘난 서울사시는 아주머니들.
뻔뻔하게 남의 밭 앞에 차까지 대 놓고선 언제든지 갈 수있게 준비까지 해 놓으셨다더군요.
시골에는 땅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아주머니들이 그냥 들에 난 작물인 줄로만 알고
가져가시는거라고 생각하셔서 외할머니가 그분들께 다가가서
"여기는 사유지이니까 농작물을 가져가지 말아달라" 고 말씀하셨다더군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물을 뜯으셨다고 합니다. 이미 가져오신
봉지는 터질듯이 채우셨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보다못한 어머니가 나서서 나가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들 하시는 말씀, "언제부터 이렇게 시골인심이 박해졌어?" 하시더랍니다.
그 말 듣고나서 저는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시골사람이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이면 자기가 피땀 흘려 일년 농사지은 작물
아무렇지 않게 줘야하는 겁니까? 도대체 얼마나 가져가시고 난 다음에야 시골인심 후하단
말씀하실건데요? 일년 열두달 주말과 휴가철이 되면 시골로 놀러오는 아주머니들,
남의 사유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말의 가책없이 농작물 가져가십니다.
가져가는 분은 '나는 농작물 가져간거 이번이 처음이에요'라고 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행태를 보이시는 분을 일년 내내 보면서 작물을 빼앗겨야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단 한번이라도 헤아려 보신적 있습니까?
예, 압니다. 대한민국 아주머니들 남편과 자식들 아끼는 마음이 넘쳐나서
좋은 것만 주고싶으신 마음 안다구요. 시장에 가도 중국산인지 국산인지도 모를 농산물
함부로 먹이고 싶지 않으신거 잘 압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그런 마음으로 캐가는 농작물을 가꾸신 농민들 또한
자기 자식들한테 좋은거 주려고 일년 내내 힘든 내색 한번 안하시고 농사 지으신거 아십니까?
정말 너무 하십니다. 일흔을 넘기신 연세의 외할머님이 손녀에게 뭐 하나라도 해주고 싶어서
일년 내내 농사짓고, 그 농산물 팔아서 손녀에게 용돈주시는 겁니다.
저희에게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싶어서 이제는 밭을 돌아다니면서 지키신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덜 빼앗기려고요. 몇 년후면 여든을 바라보는 외할머님이 쓸쓸히
밭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찢어지는 손녀의 가슴을 헤아려 보신적 있습니까?
시골에 와서 나물 한 뿌리 캐가지도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공공의 들에 피어있는 나물
마음껏 가져가세요.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습니다. 남이 잘 가꾼 텃밭, 그거 만큼은
주의해 달라는 부탁일 뿐입니다. 그리고, 늙었다고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사유지의 작물이니 그만 캐고 나가달라고 부탁한 외할머니 말씀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도대체 왜 당신들의 이기심에 외할머님이 업신여김 당해야 하는겁니까?
외할머니처럼 아직까지 농사를 짓는 분이 계시기에 여러분들도 밥 잘드시고 계시는거 아닙니까.
농사짓는 분들 우습습니까? 별것 아니고 하찮아 보이나요?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어김없이 내일 아침이 되면 손녀들을 위해 밭에 나가시는
외할머님 생각에 저는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