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朴 대통령님, 올림픽 끝나고 다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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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말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안현수가 15일(한국 시각)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공식 기자회견 도중 감개가 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다.(소치=임종률 기자)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전 펼쳐진 15일(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금메달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빅토르 안, 우리나라 이름으로 안현수(29)였습니다.

안현수는 금메달이 확정된 뒤 얼음판에 키스를 하는 감격적인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이후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철철 쏟아냈습니다. 지난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 이후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 그동안의 우여곡절도 많았기에 더욱 뜨거웠던 눈물이었습니다.

경기장은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금메달리스트를 연호하는 이름이 "빅토르"가 아닌 "안현수"로 들렸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하고 있는데 한 일본 기자가 오더니 "지금 관중이 소리치는 이름이 안현수가 맞느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옆에 있던 한국 취재진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현수로 들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러시아 관중만 있었다면 "빅토르"라는 이름이 더 컸을 겁니다. 그러나 각 나라 팬들이 모인 경기장이었고, 그들에게는 빅토르라는 이름보다 세계 쇼트트랙계를 주름잡았던 안현수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을 겁니다. 토리노올림픽에서, 또 각종 국제대회에서 너무나도 자주 우승을 차지해 그들의 기억에 깊게 각인된 그 이름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제 국제대회에서 그토록 귀에 익은 안현수라는 이름을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시상대 맨 꼭대기로 올라섰지만 경기장에는 흐르는 음악은 애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의 나라, 러시아의 국가였습니다. 착잡한 심경으로 시상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그는 조국을 버려야 했습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꿈의 무대 올림픽에 나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선수 생활을, 국가대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3관왕에, 8년 만에 다시 금메달을 따낸 선수인데도 말입니다.

▲부상과 갈등 속에 2011년 러시아로 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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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할 당시의 안현수.(자료사진=윤창원 기자)

다수의 기사에서 안현수가 국적을 바꾸게 된 배경을 설명할 때는 갈등, 파벌, 이른바 왕따 등의 단어가 쓰입니다. 대표 선발전에서 불거진 짬짜미 의혹, 대한빙상경기연맹과 깊어진 감정의 골, 파벌 싸움의 소용돌이, 여기에 소속팀의 해체까지 더 이상 설 곳이 없던 안현수가 결국은 러시아로 떠나게 됐다는 겁니다.

안현수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겪었던 일들을 속시원하게 말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신 아버지 안기원 씨가 거침없는 발언을 해왔습니다. 안 씨는 "동료 선후배 등 선수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연맹에서 전횡을 휘두르는 고위 임원 1명이 문제"라고 줄기차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안현수 역시 연맹의 수혜를 입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당시 16살의 나이로 선발전 없이 대표팀에 발탁된 것이 대표적이라는 겁니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당시 부상을 입은 선수 대신 태극마크를 단 안현수는 1000m 경기에도 출전했습니다.

이듬해부터 안현수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을 석권하며 무섭게 성장했고, 마침내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연맹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이후 2007년까지 안현수는 세계 쇼트트랙계를 주름잡았습니다.

하지만 부상 악재가 찾아왔습니다. 2008년 1월 무릎 골절상을 입은 안현수는 이후 수 차례 수술을 받았고, 그 여파로 대표 선발전에서 밀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한 쇼트트랙 관계자는 "당시는 대표로 누구를 밀어주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면서 "그런데 이전까지는 당연히 대표로 여겨졌던 안현수였지만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쇼트트랙은 이른바 짬짜미가 얼마든지 가능한 종목이라는 논란이 적잖습니다. 국제대회에서 작전이란 한 나라 선수들끼리 팀 워크로 다른 국가 선수들을 견제하는 일일 겁니다. 순수한 개인의 스피드 경쟁이 아닌 동시 레이스에서 순위 싸움을 하는 만큼 치열한 자리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대회의 국적을 국내 대회로 돌리면 선수들의 친소 관계일 겁니다. 친한 선수들끼리 마음만 먹으면 힘을 합쳐 다른 선수를 견제할 수 있는 겁니다. 파벌이 갈릴 개연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한국 쇼트트랙은 짬짜미 파문으로 얼룩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안현수는 계속해서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하던 2011년 우리나라를 등지고 러시아로 떠났습니다.

▲"귀화 과정? 얘기하면 너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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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가 아닌 안현수의 미소를 볼 수 있을까' 지난 10일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안현수.(소치=임종률 기자)

안현수는 이번 올림픽 전부터 관심을 모았습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적을 바꾼 기구한 사연에, 개최국 러시아 선수로 출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지난 10일 1500m에서 러시아 쇼트트랙 사상 첫 메달을 안기면서 완전히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8년 만에 따낸 안현수의 올림픽 메달은 노 메달에 그친 옛 조국 한국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대조가 됐고, 해외 유력 언론들도 앞다투어 이 상황을 주목했습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안현수의 귀화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안현수가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게 된 상황과 러시아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대답에 앞서 안현수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군요. 이어 "기사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지금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면서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인터뷰를 해서 내가 가진 마음과 생각들을 말씀드리겠다"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안현수는 귀화 이유에 대한 질문이 또 한번 나오자 "좋아하는 종목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면서 "정말 짧게 말하자면"이라는 본인의 말대로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저간의 자세한 사정과 마음 고생에 대해서는 "이런 기사가 나오면 올림픽 기간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면서 "내가 (말)하지 않은 이상 그런 기사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다만 이 질문들에 앞서 나왔던 답변에서 안현수가 털어놓을 생각들의 단초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후 흘렸던 눈물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었습니다.

"첫날 (1500m) 메달을 따고도 눈물이 나는 걸 많이 참았던 것 같아요. 더 이를 악물고 참았던 것 같아요. 꼭 금메달 따고 이 기쁨을 한번 누려보자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고, 저도 모르게 8년 동안 이거 하나 바라보면서 운동했던 힘든 시간들이 생각이 났고, 그 8년이라는 시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보답을 받았구나 생각에 많은 눈물이 났던 것 같고, 정말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대답 중간중간 안현수는 한숨을 자주 섞었습니다.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으로 돌아온 그의 화려한 복귀전이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어떤 얘기들이 나올지, 그 많은 눈물이 났던 마음을,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또 그것이 한국의 대통령에게까지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지도 말입니다.

p.s-기자회견에서 저는 안현수에게 눈물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저 외에도 적잖은 한국 취재진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두 우리 말로 질문했고, 안현수도 또박또박 우리 말로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 취재진이 답변을 들을 때 통역기를 이용해야 했고, 안현수 역시 자국 기자들의 질문인데도 통역을 통해 들어야 했습니다. 과연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의 조국은 어디일까요?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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