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 변호사 인터뷰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의 요즘 직함은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 소장’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진짜 여러 가지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아닐까.


본업인 변호사 외에 시사평론가, 국사문제 전문가, 자유경제원 원장,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의 앵커, 시인, 기업 사외이사, 강변포럼 운영자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가 4월 말로 대부분의 활동을 접었다. 총체적 난국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단도 궁금하고, 홀연 주변을 정리하는 심정도 궁금해서 전원책 변호사를 만났다.


왜 다른 활동을 다 접는가.
“쉴 때도 됐다. 그동안 비축해둔 체력이 고갈됐다. 시사토론 프로그램과 종편의 고정 코너는 올 초에 대부분 줄였다. 13개월 동안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오프닝·클로징 멘트와 질문지를 직접 만드느라 하루 3~4시간밖에 못 잤다. 형식적 질문보다는 핵심을 끄집어내는 질문을 하려면 이슈의 본질, 최근에 인터뷰한 내용 등을 다 공부해야 한다. 덕분에 정치·법률·경제·국방·문학까지 광범위한 공부를 했다. ‘자유경제원’의 경우 지난 3월로 임기 2년이 끝났는데 만약 연임하면 너무 안주하는 삶이 될 것 같았다. 기업의 사외이사도 그만둔 것은 쉴 때는 확실히, 완전히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제 진짜 자유인이다.”


보수논객이면서도 새누리당을 너무 혹독하게 비평해서 보수정치인들로부터 견제를 받는다는 소문이다. 고위층에서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모두에게 총을 겨누니 누가 나를 좋아하겠나. 지난 대선 무렵에 방송 프로그램에서 민주당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안철수 후보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새누리당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3주 연속 시리즈로 평했다. 다들 항의전화도 오고 지나치게 아픈 곳만 찌른다는 지적도 받았다. 새누리당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환관당’, ‘내시당’이라고 표현했으니 충분히 기분 나쁠 만하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의견이라며 방송 하차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대체 그 바쁜 실장이 전국의 방송을 어떻게 다 듣나. 참 코미디다.”






민주당과 새정추(안철수 신당)가 합당할 때도 과격한 표현을 했다.
“민주적 정당 절차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무슨 새정치냐,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란 말을 했다. 하필 그 방송에서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란 말을 1분30초간 자막으로 내보내는 바람에 심의에 걸려 ‘견디기 힘들 정도의 독설, 자막을 여과없이 노출’ 등의 지적을 받긴 했다.”


모든 당이 못마땅한 구체적인 이유가 뭔가.
“우리 정당이 3년 역사를 유지하지 못하는 게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무엇보다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같이하는 이들이 뭉쳐서 정권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념과 정책은 사라지고 오로지 보스의 마음대로 움직이니 그게 무슨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인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이나 정강정책이 유사하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나 김한길 새정치연합 대표가 국회에서 한 연설을 사람 이름을 지우고 읽어보면 너무 비슷하다.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두 당의 정책은 래디컬 레프트, 즉 급진좌파 수준이다. 보편적 복지를 강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두 당은 서로 견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빨리 합쳐져서 한 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사진 자료도 정말 놀랍다. 2007년 정동영 민주당 후보와 김종인 박사가 같이 서 있고 ‘국민행복시대’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2012년에는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박사가 역시 같이 서 있고 캐치프레이즈 역시 ‘국민행복시대’다. 옷도 똑같이 빨간색이다. 시간이 5년차이고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후보만 바뀌었을 뿐 옷 색깔, 멘토, 캐치프레이즈는 똑같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구분되나.”


국민행복에 당의 이념이 뭐가 중요한가.
“각 당이 정체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새누리당의 정책과 선거 공약을 보면 절대 보수적인 성향의 당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는 사회민주주의에서나 펴는 주장이다. 김종인 박사는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라고 했다. 그리고 새누리당 정강에서 ‘보수’란 말을 빼자고 주장했는데 단 한 명도 반발하는 의원이 없었다. 1969년 독일 사회민주당 당수 빌리 브란트가 총리에 당선되었을 때, 산별 노조들이 입 모아 기업 경영 참여를 요구했지만 브란트 총리가 강경하게 반대했다. 독일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한마디도 못한 의원들은 공부를 안 하는 건달이거나, 눈치만 보는 환관들이다. 민주당과 새정추의 합당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민주국가의 정당에서 대표 둘이 만나 결정하고 당원들에게 합당했다고 통고를 하나. 새 정당을 만들 때는 과거 정당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다. 안철수 대표의 경우 ‘내 정책과 이념은 이러하니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오시라’고 하지 않고 ‘국민의 뜻이다’란 말만 한다. 성숙된 민주주의와는 너무 거리가 멀고 정치나 정당의 본질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무릇 벼슬하는 사람은 국민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란 글이 나온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국민을 어루만져주나. 어루만지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 행복을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전 변호사가 생각하는 새정치는 무엇인가.
“안 대표는 기초공천 폐지를 새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과거 국회의원들이 시·구의원 공천과 휘하 대의원을 갖고 장사를 했다며 기득권을 내려놓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정당정치는 공천권이 필수다. 중요한 것은 기초공천이 아니라 비례대표부터 폐지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로 각 지역별 대표를 뽑는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비례대표 제도가 난센스다. 대선거구제 등의 경우, 지역에서 선출되기 어려운 전문가,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낼 직군들을 국회에 영입하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참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이 크고 정책 개발을 각 행정부처가 다 한다. 현재 우리의 비례대표는 각 직능별 대표나 전문가 영입이 아니라 보스들이 자신의 이권을 챙기고 세력을 심기 위한 제도다. 오죽하면 전국구가 아니라 전(錢)국구란 말이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출마했을 때 언론인 500명, 법조인 500명, 교수 2000명이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정말 MB의 정책과 이념에 공감해서였을까. 아니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서였다. 비례대표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막는 제도이자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고자 하는 것이 나쁜가.
“모두 장관·국회의원 자리에 겁을 안 내는 것이 참 무섭다. 제정신이 박힌 이들이라면 국회의원 임기 4년을 충실히 하면 다 탈진한다. 정책 개발, 상임위원회 해당 부처 감시·감독, 국감 자료 연구, 질의응답 준비를 하다보면 정말 잠을 잘 시간도 부족하다. 그런데 국회의원을 보면 얼굴도 몸도 너무 건강하고 다들 공천받아 재선, 3선 할 궁리만 한다.”


그럼 한국 정치가 바뀔 획기적 묘안이 있나.
“1948년 건국 이후 60년이 지났으니 만주주의가 성숙할 때다. 농담이 아니라 가장 좋은 방법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하는 것이다. 정당은 그 이름만으로 그 당의 이념이 확실히 보여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신한국당, 새한국당,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특히 집권 여당이 이토록 정책이 불분명한 나라가 어디 있나. 가까운 일본의 자유민주연합,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영국의 보수당 등은 당명에 당의 이념이 다 나와 있다. 그러니 정책도 이념도 비슷한 두 거대 당이 합쳐서 거듭나야 한다.”


시사평론은 아직 그만두지 않았으니 ‘세월호’ 침몰사고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나사가 빠진 공무원 조직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터진 사건이다. 국민이 아니라 돈과 권력에 복종하는 무리들의 뻔뻔한 태도 탓이다. 모피아, 원전마피아, 국토피아, 철도마피아에 이어 해피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공무원 조직들이 끼리끼리 뭉쳐 두목의 명령에 복종하는 마피아의 모습을 보이나. 세월호는 우리 시회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다. 겉으론 화장을 덕지덕지해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위기 대응 매뉴얼을 문제 삼지만 이 사건 후에 만들어진 대책본부가 12개다. 대책본부가 많으니 어떻게 일이 빨리 해결되나. 중앙정부 부처에서 평소 재난 대응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민방위 훈련도 하고 을지포커스 등도 하지 않나.
“형식적이다. 을지포커스 훈련 때 보면 해마다 ‘예비군 소집 응소 97%’란 자료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전쟁이나 재난 상태가 되면 포탄이 떨어져 길이 막히기도 하고, 다른 문제도 생길 텐데 어떻게 매년 응소율이 97%인가. 전형적인 탁상 행정이다. 이제라도 곪아터진 상처를 들어내고, 다시 점검하고, 바꿔야 한다. 재검검을 할 기회이기도 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채울 것은 채워서 국가의 틀을 다시 짜맞춰야 한다.”


국가 재정비에 가장 선행 요소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권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실상 별로 없다. 국무총리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저 몇몇 인사권이 있을 뿐인데, 그 자리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었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만 해도 대통령은 무소불위 제왕적 권한이 사라진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데 보수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보수주의의 핵심은 도덕성이다. 보수주의가 엄격한 아버지라면 진보주의는 자애로운 어머니여야 한다.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다. 보수주의자이지만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당이나 정치인 가운데 진정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없다. 우선 현 보수정당은 부도덕하다. 진보정당은 무책임하다. 어떻게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면서 국가부채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나. 국가부채, 가계부채, 공기업과 지자체 부채의 규모를 제대로 알면 정말 잠이 안 올 지경이다. 현재 갚을 자산이 없는 부채가 70%인데, 그건 우리 기성세대가 아니라 10대와 20대들이 떠안아 갚아야 한다. 후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무조건 퍼주기식의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고, 4대강 사업에 든 22조원 등의 돈만 안 써도 복지혜택이 돌아가지 않나.
“상위 10%의 사람들이 소득세의 80%를 낸다. 부자들에게 세금 압박을 하면 오히려 경제활성화에 지장을 준다. 그 사람들이 불법으로 안 내는 세금, 바하마 등에 숨긴 돈이나 탈세한 것을 찾아내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세금을 올려도 세금폭탄이라는 말을 하는데, 정당한 세금은 국민의 의무다. 또 4대강에는 5년간 22조원이 들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려면 1년에 27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수입은 생각하지 않고 지출 계획만 세워놓은 셈이다. 지하경제 활성화로 51조, 세출 개혁으로 84조원을 거둬들인다는데, 그럼 그동안 정부에서 세운 예산은 그토록 엉터리이고 날림 예산이었나. 노동 경직성이 높은 것도 우리나라의 문제다.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려면 사회안전망이 탄탄해야 노조에게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데, 어디 그런가.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럼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나.
“더 중요한 것은 복지 사각지대의 해결이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희귀병 질환자에 대한 복지 말이다. 독거노인 가운데 5%는 따로 사는 자식이 있어서 오히려 혜택을 못받는 경우다. 얼마 전 팔순의 꼬부랑 할머니가 폐지를 수집하기에 우리집에 모아둔 신문지를 드리며 함께 리어카를 끌고 간 적이 있다. 몇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다.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폐지를 리어카에 가득 채워 가야 3000원을 받는단다. 이들을 비롯, 세 모녀 사건 같은 아픔이 없도록 복지 사각지대부터 해결한 다음에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한다.”


<자유의 적들> <진실의 적들> 등 저서를 보면 독서량이 엄청나다. 법률가이지만 군사전문가이기도 한데, 언제 그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나.
“군법무관으로 10년을 보낼 때 책을 많이 읽었다. 또 결혼을 늦게 해서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다. 전문분야의 책만 아니라 인문학·경제학 등의 책을 읽어 융합을 해야 세상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다. 보수주의자이지만 진보주의 책을 더 많이 읽는다. 상대를 알아야 그만큼 제대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 등에서는 과격한 발언에 표정도 무서운데 원래 성격인가.
“뒤틀어진 세상이 나를 과격하게 만든다. 물론 방송에서는 강한 어조로 말을 해야 시청자들이 집중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면도 있다. 알고 보면 정말 부드러운 남자다.”




“이젠 자유다”를 외치지만 그는 <신 군주론>이란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고치기 힘든 병이 일중독증이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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