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마음에 글을 씁니다 .
방문횟수가 엄청 낮습니다 . 가입한 이후에 줄곧 눈팅만 해와서 그렇습니다 .
대신 실명을 밝히겠습니다 . 제 이름은 권성민이고 , 예능 PD 입니다 .
오늘의 유머는 제가 학부 졸업학기에 ‘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 을 다루는 수업에서 ‘ 온라인 공론장 ’ 의 연구주제로 삼았을 만큼 관심 있게 봐온 사이트입니다 . 연구의 결론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 온라인 상의 공론장은 공론장 자체를 목적으로 했을 때보다는 , 유희적 기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때 , 다양한 사람들의 꾸준한 상호작용을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더 충실한 공론장으로 기능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 그 과정에서 또 한 가지 , 온라인의 주요 기능인 유희적 문화 대부분은 오유를 비롯한 유머 커뮤니티들에서 1 차로 생성된 후 온라인 공간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사실과 , 이러한 흐름을 타고 공공 이슈에 대한 여러 의견들도 함께 확산된다는 사실도 수치상으로 확인했습니다 .
사실 그때는 이런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 불과 3 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 워낙 곳곳에서 오유발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오유를 즐겨보는 편인데 , 최근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조심스레 키보드를 열었습니다 .
저는 신방과 출신이지만 TV 를 거의 보지 않고 살았으면서도 , MBC 만큼은 꽤 좋아했습니다 . 시사부터 예능까지 ,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다루어내는 솜씨를 보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 그리고 운 좋게 그 MBC 에 들어왔습니다 . 사실 이미 그 때도 슬슬 엠병신의 모습이 한창 엿보일 때였지만 , 머잖은 미래에 다시 마봉춘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이렇게 금방 , 바닥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안가는 모습으로 추락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
저희 입사동기들은 한동안 회사에서 ‘ 파업둥이 ’ 로 불렸습니다 . 합격통보를 받고 입사를 기다리는 동안 파업이 시작됐고 , 파업이 시작된 바로 다음 날이 입사일이었으니까요 . 노조 가입이 제한되는 수습기간 동안 빈 회사에서 일을 했고 , 그동안 회사 밖에서 만난 선배들은 어차피 수습 3 개월이 끝나기 전에 파업도 끝날테니 염려 말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 그리고 그 파업은 거짓말처럼 7 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
저희 동기들도 수습기간 동안 이런저런 압력을 받았습니다 . 수습해제 후 파업에 동참하려고 하면 임용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 각자가 느끼는 무게는 달랐지만 , 저희들도 수습이 해제되자마자 바로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
이제 와서 돌아보면 믿기지 않지만 , 마봉춘은 엠병신과 꽤 열심히 싸웠습니다 . 그나마 학생 신분과 별다를 바 없었던 저 같은 경우는 수입이 없는 7 개월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 가정이 있는 분들에게는 훨씬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파업에 마땅한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 꾸준히 이어지는 서명운동과 집회에 사실 구한다고 해도 제대로 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 대출을 받고 대리운전을 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 하지만 사측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도 업무로 복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간혹 있었지요. 그리고 지금 이 회사는 그들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 거리에 나가면 응원해주시고 , 서명에 참여해주시는 수많은 시민분들 덕분에 , 힘이 나고 때론 눈물도 났습니다 .
하지만 파업은 졌습니다 .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봤지만 , 결국 방문진에 의해 좌우되는 사장인사의 문제는 정치 역학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 언론을 노예삼지 않을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기대하는 것 말고는 다른 활로가 없었고 , 대선의 결과는 절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 문제의 경영진 대부분이 유지된 채 , 얼굴마담일 뿐이었던 김재철 사장은 전혀 다를 바 없는 다른 허수아비로 바뀌었습니다 .
그 사이 사측은 ‘ 시용직 ’ 이라는 전무한 고용형태로 대체인력을 대거 뽑았고 , 눈에 거슬리는 이들은 차례차례 해고해나갔습니다 . ‘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은 합법 ’ 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도 , 사측의 직원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도 이들은 콧방귀를 뀌며 오히려 보란 듯이 , 이미 두 차례나 중복징계한 바 있는 PD 수첩 제작진에게 또 다시 징계를 내렸습니다 .
변명을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 정말 수치스러운 뉴스가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 결정권을 쥔 이들은 모든 비판으로부터 두 귀를 틀어막은 채 자화자찬하기에 바쁩니다 . 세월호 참사의 MBC 보도는 보도 그 자체조차 참사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번 보도가 ‘MBC 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 고 떠들었습니다 .
( 다음은 사내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 전문이 실린 기사 링크입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7114505927 )
어째서 맞서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 상황 ’ 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변명처럼 보이고 , MBC 밖의 분들에게나 , 안의 분들에게나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경솔한 발언인 것 잘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
지금 MBC 는 노조가 세 개가 되었습니다 . 2012 년의 파업까지를 주도했던 원래의 MBC 노동조합 ( 편의상 제 1 노조라고 부르겠습니다 ) 이 하나이고 , 이 노조의 활동 대부분을 편향적이라 공격하던 기자출신 직원 이상로 씨가 만든 노조가 두 번째 ( 제 2 노조라고 부르겠습니다 ), 그리고 2012 년 파업 이후 , 파업 복귀 세력과 시용직들이 중심으로 새롭게 만든 노조 ( 제 3 노조라고 하겠습니다 ) 가 세 번째입니다 . 제 2 노조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비한 편이고 , 따라서 현재의 MBC 는 크게 제 1 노조와 제 3 노조의 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현재의 경영진은 노골적으로 제 3 노조에 소속된 인원들의 입장을 최대한 지원해주고 있고 , 제 3 노조 세력들 역시 가장 적극적으로 경영진의 결정사항을 수용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 파업 중에 사측에서 대체인력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시용기자세력은 , 파업 인원들이 전원 복귀하여 제작 인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경력직 채용 등의 형태로 그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 제 1 노조 소속으로 활동하던 기자들이 조금이라도 결정사항에 반발하면 징계나 발령부서 조정 등으로 취재부서로부터 배제시키고 , 그 자리를 남아도는 제 3 노조 세력의 직원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 기사의 질이나 완성도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 그 결과가 지금 방송되고 있는 엠병신의 뉴스입니다 .
( 몇가지 기사 링크를 첨부합니다
시용기자 관련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media/newsview?newsid=20130619164518875
MBC 파업 정당 판결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118030226753
가장 최근 시행된 MBC 경력기자 채용 기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429104809475
김재철을 변호하던 변호사를 법무부장으로 채용한 기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429210507145 )
가장 앞에서 적극적으로 싸우던 분들이 본보기로 해고되어 , 회사 바깥에서 대안언론으로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 그분들의 피나는 노력 , 저도 늘 알리고 , 후원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 하지만 지금 MBC 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도 그들과 함께 많은 것을 각오하며 싸웠고 , 졌고 ,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
사실 예능국 소속인 저는 , 보도와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부당한 지시를 받을 일은 없습니다 . 예능국은 아직까지는 은근슬쩍 시사적인 풍자도 가능한 곳이기도 합니다 . 물론 이런 상황에서 슬쩍 넣는 풍자는 처연한 자위나 마찬가지입니다 . 하지만 그런 예능국에 있기에 , 보도국의 기자들 스스로는 차마 하지 못하고 있는 말들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
네 , 저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 ,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복종 실험 ,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지금의 MBC 에서는 아주 사소한 반발로도 취재 업무를 빼앗깁니다 .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어떤 기사든 써낼 기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
개인의 반발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 먹고사는 문제까지 떨쳐내고 분연히 일어난 영웅들께는 박수를 보냄이 마땅하지만 , 그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노조가 존재합니다 . 질 수 밖에 없는 개인들의 싸움을 , 해 볼만 한 덩치끼리의 싸움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 그러나 노조는 지난 파업 때 할 수 있는 싸움을 다했습니다 . 더구나 지금의 회사 구성원은 상당수가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 대부분의 구성원이 함께 싸움에 참여했던 지난번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 지금 똑같은 싸움을 다시 시작하면 ,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 너무나도 손쉽게 자신들의 입맛대로 구성원을 교체할 것입니다 . 대놓고 MBC 를 영원히 넘겨주는 꼴이 될 뿐입니다 .
그럼 MBC 는 그냥 영원히 엠병신으로 망하게 놔두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새로운 언론을 형성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앞으로도 한참은 쉬이 망하진 않을 겁니다 . 계속해서 쇠퇴하는 중이긴 하지만 , 여전히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큽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이토록 열심히 손에 쥐려 하는 것이지요 . 계속해서 활약하는 대안언론들을 지켜보셔서 아시겠지만 , 대안언론을 찾아볼 수 있는 분들은 사실 장악된 지상파 언론에도 쉽게 속지 않습니다 . 문제는 분별없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입니다 . MBC 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와 뜻을 모아 새로운 언론을 만든다 한들 , 지상파 전파를 타는 것은 여전히 MBC 입니다 . 아니 , 그때의 MBC 는 더욱 노골적이겠지요 . TV 조선을 지상파에 안착시켜주는 모양이 될 겁니다 . 지상파 사업자의 허가는 엄격합니다 . 새롭게 만든 대안언론이 지상파를 타고 송출되기란 요원할뿐더러 , 그런 허가가 날만한 정부라면 MBC 도 얼마든지 마봉춘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
계속해서 싸워온 , 원래의 마봉춘을 자랑스러워했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 다시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독을 차고 있습니다 . 혹은 , 노조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까지 참고 있습니다 . 지금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지만 , 그 화를 못 이겨 똑같이 싸웠다가는 또 똑같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 어쨌든 이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
그리하여 치욕을 삼키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무력한 싸움들을 하고 있습니다 . 아이템을 거부할 수 없다면 , 리포트의 문장 하나 , 단어 하나를 바꿔가며 그래도 차라리 차악의 형태로 바꾸어 방송에 내려 하고 있습니다 . 어차피 이 뉴스 , 내가 안하면 더 최악의 형태로 읽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세월호 관련 보도들은 그 싸움을 하지 않는 이들의 작품이었습니다 . 이런 이야기들 , 기자들 아나운서들 당사자들은 못합니다 . 어쨌든 같은 배를 타고 나간 뉴스이니까요 . 묵묵히 기레기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엠병신을 욕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 마음껏 욕해주세요 . 더 먹어야 합니다 . 사실 욕은 저희들이 제일 많이 합니다 . 불매운동도 좋습니다 . 뉴스도 이미 안 보시겠지만 , 주변에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이런 상황임을 알려드리고 보지 말라고 해주세요 .
다만 이 얘기를 드리는 것은 , 다시 싸움을 시작하려 할 때는 싸우는 이들과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고자 함입니다 . 최근 KBS 와 MBC 의 보도국장들과 관련하여 , 노조와 기자협회 등에서 성명서를 내고 발언을 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차가운 반응들을 봅니다 . 실망하고 분노하신 마음들 이해합니다 .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입니다 . 하지만 그 움직임들은 물타기도 아니고 여론전환용도 아닙니다 . 그 속의 사정은 이랬고 , 이런 싸움들이 이어져왔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박근혜 정권의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근혜의 국민이 아니지 않습니까 . 결국 박근혜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 수치스럽지만 , 그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싸워 비록 대통령이 박근혜라 한들 그 정부에게라도 국민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있지 않습니까 . 엠병신의 직원들이라고 해서 모두 엠병신에 적극적으로 충성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기다리고 있고 , 그 승패는 뜻을 같이 하는 국민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
부디 ,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서 동의할 수 있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힘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